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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학술동향] 산서 진중 유촌 유적

    경희대학교 한국 고대사 고고학 연구소 2022-07-04 480

    [사진 1] 진중 유촌 유적 M126()M26() 한묘 및 출토 동차마구

    산서 진중 유촌 유적

    이후석(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진중 유촌 유적은 산서성(山西省) 진중시(晉中市) 유차구(楡次區) 오금산진(烏金山鎭) 유촌(流村)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대지 위에 위치한다. 20204~12월 진중시의 신시가지 건설 부지에서 확인되었으며, 조사결과 한--송금-명청 대의 무덤 112기가 분포하는 공동묘지로 밝혀졌다. 특히 한묘들은 모두 32기인데, 서한 후기부터 동한 전기까지, 즉 기원전 1세기대~기원후 1세기대의 무덤들로 알려졌다.

        유촌 묘지의 한묘들은 소위 토동묘(土洞墓)에 해당된다. 토동묘는 묘도, 묘문, 묘실 등을 지닌 횡혈식 구조의 목곽묘나 목실묘를 가리키며 진한시기부터 유행했던 묘제이다. 묘도의 방향에서 시간성이 보이는데, 북쪽 14, 동쪽 2, 남쪽 1기이다. 묘도의 형태는 26호묘를 비롯하여 대개 직선적인 세장방형인데, 104호묘나 109호묘는 입구 쪽이 굽어 있다. 묘문은 아치형을 띠는 예가 많고, 목판으로 폐쇄되어 있다. 묘실 형태는 세장방형이며, 궁륭상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무덤에는 묘실 천장 부근에 일종의 감실을 마련하여 토기류(, )를 매납하여 놓은 예도 확인되었는데, 이와 같은 감실이나 묘광 내의 충전토의 위에 토기류를 매납하는 것은 진대부터 이어져 온 유습이다.

        묘실 매장부는 기본적으로 목제 관곽 구조인데, 통나무를 절반으로 잘라 만들었다. 11관 또는 12관이 확인된다. 합장묘의 대부분은 우측에 남성을, 좌측에 여성을 배치했다. 신전장이 일반적이지만, 굴신장과 앙와굴장 등도 확인된다. 두향은 대부분이 묘도의 방향과 같다. 부장유물은 토기류가 많고, 칠기 및 동차마구 역시 적지 않게 확인된다. 동경, 동전, 동인, 청동대구, 철제방울, 유리이식 등도 자주 확인되는 유물이다. 토기류는 주로 관과 곽 사이에 부장되며, 관의 위나 앞에 부장하는 것도 확인된다. 토기 바닥 외측에 방형 도장무늬가 있는 것이 적지 않게 확인되었는데, 귀부해 온 남흉노인과의 관련성이 제기된다. 묘문 쪽의 목곽 앞쪽에는 넓은 빈공간이 마련되었는데, 장례 때의 제사공간이다. 주로 칠기와 차마구가 부장되어 있다.

        마차가 부장되어 있는 무덤들도 적지 않다. 마차는 묘문 쪽을 향하도록 묻혀 있어 마구류는 앞쪽에, 수레 및 거여구는 뒤쪽에 주로 위치한다. 마차는 대부분이 쌍원차(외두마차)에 해당되나, 독주차(쌍두마차)도 일부 확인된다. 주목되는 것은 26호묘와 같은 독주차의 부장이다. 기존 통설에는 서한 후기 또는 기원전 1세기대부터 최상위급 신분으로 볼 수 있는 제후 등이 아니라면 쌍원차가 부장되었다고 이해하였지만, 유촌 유적에는 상위등급 이하 신분으로 판단되는 것임에도 독주차가 부장되어 있어 기존 통설은 수정이 불가피한 상태이다. 북한지역의 낙랑 초기 마차 역시 어떤 구조인지 논란이 많은데, 결국 독주차와 쌍원차가 모두 사용됐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유촌 유적의 한묘들은 통나무를 절반으로 잘라 곽실을 짜맞춤하였고, 묘실 상면에 유물을 매납하였다는 것이 다른 지역 한묘에서 확인되지 않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한 후기에도 쌍원차와 함께 독주차가 어느 정도 사용되고 있었음도 밝혀졌다. 도장무늬가 있는 토기류가 한에 귀부했던 남흉노인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인골 분석 등을 통해 검증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특히 귀부해 온 남흉노인들은 쌍원차보다는 독주차를 선호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출처 및 참고자료

    山西晉中楡次區流村北墓地考古發掘取得重要收獲, (晋中市文物保护和考古研究中心)

    『文博中國』 2021-06-23.

    (http://kaogu.cssn.cn/zwb/xccz/202106/t20210623_5342076.shtml)